기자 초년병들에게… “우린 처음에 니가 바보인줄 알았어

  

선배들이 과거 나에게 했던 말이다.  

 

뭔가 아는 것이 없었고 똘똘한 티도 안났을뿐더러 무엇인가 완전히 이해하는데 까지 다른 동기들에 비해 더뎠기 때문이었다. (아직까지 바보일지도,.)

 

선배들은 겉으로는 참고 기다려줬고. 난 나 자신의 무능함을 철저히 탓했다. 그러면서도 두고보라며 속으로 이를 갈았었지.

 

6개월쯤 지났을 무렵부터는. 갈굼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고. 어느 순간 싫은 소리가 끊기기 시작하더니. 일주일에 한번 사무실에 갈라치면 어이~에이스 왔냐는 말도 들을 수 있었다. 듣기좋으라고 한 말이었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기대에 부응했기 때문에 이런 평가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때 당시 그 선배들이 지금 쓰고 있는 기사를 보면. 당시에 느꼈던 감흥은 온데간데 없고. 가끔은 야마를 왜 이렇게 썼을까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오곤 한다. 그만큼 내가 성장했다는 의미겠지.

 

그랬던 내가 최근 후배들로부터 과거 내 모습을 일부 발견하고 있다. 나름대로는 꼼꼼하게 설명한다고 설명하는데 받아들이는 쪽은 쉽사리 이해를 하지 못하는 뭐 그런 상황.

 

그런데 한가지 다른 것은.

 

나의 경우 비록 시간은 지연됐지만 결국에는 이해를 했고. 그 대신 같은 실수를 거의 반복하지 않은데 반해. 일부 후배들은 이해 자체를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해할 의지가 없다고나할까. 스스로의 멍청함은 전혀 고려치 않고 그 책임을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안타까운 상황.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잘못된 태도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나는 바보가 맞다는 자신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스스로의 존재감을 깎아먹기라도 하나? 알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다른 동료 A, B도 이해를 못했다. 때문에 당신의 설명이나 방식에 하자가 있는 것 아니냐는 논리를 은연중 펼치기까지 한다. 억울하다는 뉘앙스. 그 느낌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재미있는 사실은. A B가 그 사람과 있을 때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는 모르겠지만 업무와 관련해서는 비교 불가할 정도로 너무도 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적해준 부분은 수정하고, 보완해야 할 것들은 보완하면서 그렇게 자신의 자리를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잔소리는 자연스레 사라질 수 밖에. 내가 과거 선배들의 잔소리로부터 멀어진 것처럼.

 

기자는 사실 아는 게 없는 존재다. 모르는 백지 상태에서 눈에 띄는, 혹은 귀에 들어오는 팩트를 활자화해서 쓰는 기계일 뿐이다. 많은 지식과 정보는 오히려 팩트를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어줍지 않은 분석기사를 잘못 쓴 바람에 각계 전문가들에게 난타당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읽고 쓰는 노력보다는 자신의 논리를 앞세우는데 시간을 허비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자신의 지적 수준을 냉철히 평가하기 보다는 그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데 바쁘다.

 

일정 정도 사회부적응이 아닐까 싶다.

 

결국 기자질이라는건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거기서 정보를 얻고, 나름의 논리를 세워 새로운 무엇인가를 써내려가는것을 생활화 하는 사람들인데. 사회부적응은 이것을 철저하게 차단시키는 1등 요인이다.

 

놀라운 것은, 보통의 평범한 직장인들이나 사회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사회부적응자들을 단번에 찾아낸다는 점이다.

 

자신만의 세계를 보호하기 위해, 그것을 부정하는 순간 한도 끝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죽을힘을 다해 보호막을 치고 귀를 닫고 있는 것은 아닐까…… 

 

 

Posted by Journalist Kim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