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신해철… ‘응답하라 1994-1997’ 세대는 술로 밤을 지샜다

 

드라마 속에 그런 장면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신해철파서태지파로 양분돼 옥신각신하던 고등학생들의 모습. 누가 음악적 천재냐를 두고 고성이 오가던 때가 있었다. 주먹다짐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994년이었다. 고백컨데 난 서태지파였다.

 

음악적 스타일을 놓고 봤을 때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범주의 천재였다. 굳이 비교하자면 국영수중 한 과목에 특출난 인재들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윤종신, 유희열, 윤상 등 비슷한 연령대 가수들 모두 천재가 아닐 수 없다. 저마다의 개성이 뚜렷함은 물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독보적 분야가 있으니 말이다.)

 

대중가요계의 큰 별이 떨어졌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어린 시절 음악적 감성에 젖어 드는 기쁨을 줬던 그였기에 일면식도 없는 남의 죽음 그 의상의 의미임에는 분명하다. (난 그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그는 나에게 너무도 많은 것들을 선물해 준 것 같다. 미안함이 느껴지는 이유랄까.)

 

20대 초반,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회 초년생들도 신해철을 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대에게를 안다. 2014년 현재 각 대학교 응원단에서 액션곡으로 여전히 활용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1988 MBC대학가요제에서 무한궤도가 대상을 받은 곡이다. 신해철을 주축으로 한 그룹사운드였다.

 

신해철은 사회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방식이 일종의 전매 특허였다. 지금이야 독설 하면 김구라지만 원조 독설가는 신해철이었다. 그가 진행했던 라디오 고스트스테이션이 그랬다. (‘마왕이라는 닉네임도 그 당시 언저리에 붙은 것으로 기억한다.)

 

10대와 20대는 물론 30~40대를 아우르는 연령층들의 말 못할 고민에 그는 독설을 퍼붓기 일쑤였다. 당사자는 기분이 상했을지 모르나 듣는 이의 공감을 끌어내기엔 충분했다. 듣기 좋은 사탕발림식언변이 아니었다. 치부를 드러내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그런 방식이었다. 비록 당장은 아프지만 후유증을 줄이기 위한 노력으로 기억한다.

 

거친 상남자. 그 중심에 고요하게 흐르고 있는 따스함이었다.

 

그의 결혼스토리도 눈물샘을 자극한다.

 

신해철의 부인은 미스코리아 뉴욕 출신으로 미국 유력 금융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던 미모의 재원이었다. 두 사람은 연애를 시작했고, 이후 신해철은 아내가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혼엔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그대로 ’…

 

엄청난 결심을 하지 않고서는 힘든 결정 이라는 것,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십분 공감할 것이다.

 

남겨진 아내와 9살 딸, 그리고 7살 아들에게 작별인사조차 하지 못한 신해철. 아쉽고, 또 안타까운 감정이 잠든 그에게서 절절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장례식장에 울려 퍼질 노래라고. 자신의 비문에 새겨질 자신의 노래라고 했던 신해철.

 

민물장어의 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저 강들이 모여 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Posted by Journalist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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